명탐정 코난/신른, 코른

[아무코] 밤산책

굴 속의 너구리 2016. 10. 20. 15:30

밤산책





근 한 달 사이에 날씨는 빠르게 추워져서,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코난 역시 긴 팔 티셔츠 위에 외투를 또 걸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오늘 일어난 사건들을 들여다 보았다. 자영업자 살인 사건, 은행 강도, 13세 아이 실종 사건사건의 기사들을 읽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포와로 앞이었다. 코난은 유리창 너머 포와로를 들여다 보았다. 아즈사가 홀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고 있었다.

 

토토 수족관 이후 한 달하고 3, 포와로에 아무로는 없었다.

 

 

* * *

 

 

아무로가 사라진 지 일주일 쯤 됐을 무렵, 아즈사는 코고로를 따라 내려온 코난을 향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코난 군, 아무로 씨한테 무슨 일 있는지 아니? 한동안 못 나온다고 연락이 왔는데 이유는 말해주지 않아서. 코난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라요. 아즈사는 쟁반을 옆구리에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코난 군은 아무로 씨와 친했으니까 뭐라도 듣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코난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아무로가 사라진 지 이주 째, 포와로에는 여성 손님이 줄었다. 아무로 씨를 좋아해서 오는 여성 단골 손님들이 많았거든. 햄 샌드위치도 인기 많았고. 아즈사가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며 코난의 앞에 햄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내려 놓았다. 코난은 남자들이 바글바글한 포와로를 둘러 보았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여성의 비율은 크게 줄었다. 햄 샌드위치는 아무로가 만들어준 것과 다른 맛이 났다. 하지만 코난은 내색하지 않고 햄 샌드위치를 입에 밀어 넣었다.

 

아무로가 사라진 지 삼주 째, 코고로는 포와로에 내려가는 횟수가 늘었다. 포와로의 유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흡연석 쪽의 모리 코고로 지정석에 앉는다. 그 때마다 코난도 함께였으므로, 그는 코고로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아도 아무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아무로 씨가 사근사근하게 잘 하긴 했지. 코난은 코고로의 맞은 편에서 오렌지 주스를 쭉 들이마셨다.

 

아무로가 사라진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 또한 수족관 사건이 한 달째 되는 날. 란은 달력에 일정을 체크하다가 코난을 보고 물었다. 코난 군, 아무로 씨 보고 싶지 않니? 포와로에 나오지 않은지 한 달이나 됐어. 코난은 가방을 챙기다가 핸드폰 액정에 뜬 날짜를 확인했다. 벌써 한 달이었다. 코난은 아무로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이내 취소 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그는 아무로 토오루의 핸드폰을 꺼 놓고 살 것이다. 닿지 않을 연락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로가 사라진 지 한 달 하고 3일째 되는 날, 코난은 혼자였다. 란은 가라데 부 부원들과 하루간 학교에서 합숙을 한다고 했고, 코고로는 다른 친구들과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친구의 늦은 결혼식에 간다고 했다. 식탁 위에 란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 냄비 안에 카레를 해두었으니 데워 먹거나, 카레가 먹기 싫다면 아즈사씨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둘 테니 포와로에서 무언가를 사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는 한참 남았으므로, 코난은 추리 소설을 읽으며 어떻게 할 지를 정하기로 했다.

 

추리 소설은 6권 짜리 시리즈였고,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적합했다. 코난이 5권을 다 읽고 6권을 집어 들자 핸드폰이 울렸다. 어느새 7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보나마나 란일 것이다. 지금까지 소설을 읽느라 저녁을 안 먹었다고 하면 분명히 걱정하며 화를 내겠지. 코난이 변명할 만한 말들을 생각하며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배터리가 다 나가서 친구 걸로 전화하는 건가? 코난은 주변에 널부러진 책들을 정리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오랜만이야, 코난 군.”

 

코난이 퍼뜩 놀라 핸드폰을 바르게 쥐었다.

 

아무로 씨?”

 

 

* * *

 

 

한 달만에 들은 아무로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가벼운 투였다. 날씨가 좀 추워졌는데 감기는 안 걸렸니? 저녁은 먹었고? 한참 사소한 내용을 주고 받은 후에야, 아무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토토 공원으로 나와 줄 수 있을까? 코난은 시계를 힐끗 보고 아무렇게나 벗어서 내던져 두었던 외투와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 곧 갈게요.

 

밤 바람이 서늘했다. 코난은 코 끝까지 목도리를 올리고 스케이트 보드의 속도를 높였다. 그새 밤이 찾아왔고, 새까맣게 물든 밤 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추운 날씨 탓인지 공원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밝게 켜진 가로등 사이를 지나 구석진 곳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벤치에는 검은색 캡 모자를 눌러 쓴, 얇은 옷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코난이 그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아무로 형.”

 

아무로가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흐릿한 곳이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따뜻하게 입고 나왔구나, 코난 군.”

아무로 형은 엄청 추워보이는데

그래? 란이나 모리 탐정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

. 다행히 오늘 둘 다 집을 비워서.”

타이밍이 좋았네.”

 

아무로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코난은 스케이트 보드를 옆구리에 낀 채 아무로에게 다가갔다. 캡 모자의 음영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코난이 손을 뻗어 캡 모자를 살짝 들어올렸다. 청회색 눈동자가 코난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왜 그래?”

얼굴이 안 보여서요.”

 

아무로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분명 검은 조직과 공안국의 뒷 수습 때문이다. 검은 조직에서는 그에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함이라며 다양한 일을 시켰을테고, 그는 의심을 풀기 위해 무엇 하나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거운 감시 아래에서 공안의 일은 일대로 처리해야 했을 거고. 아무로는 제 턱을 문지르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좀 춥지만, 같이 산책하지 않을래?”

 

코난이 고개를 끄덕이고 벤치 아래에 스케이트 보드를 밀어 넣었다. 아무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은 채 코난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난은 잠시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아무로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아무로가 의아한 얼굴로 코난을 보았다.

 

손 잡아요.”

 

아무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코난의 손을 잡았다. 아무로의 손은 코난의 것보다 훨씬 컸고, 차가웠다.

 

 

* * *

 

 

그들은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대부분 사소한 이야기였으며, 아무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먼저 이야기를 끊었다. 코난은 그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어 주었고 가끔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아무로는 대화가 끊어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바쁘게 말을 이었다. 대화 도중에 짧게 찾아오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여유롭고 안정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코난은 아무로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아무로는 정신을 차린 듯, 당황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 출발했던 벤치가 가까워질 때쯤, 아무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을 죽였어.”

 

코난이 의아한 얼굴로 아무로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로는 표정 변화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릿하게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오늘 자 기사 봤니? 자영업자 살인 사건. 내가 한 짓이야.”

…….”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했어. 그를 살려서 빼돌리고 싶었지. 하지만 감시를 당하는 몸으로는 어디에도 연락할 수 없었어. 그런 무력감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

그를 죽이자 한 달 동안의 감시가 풀렸어. 웃기는 일이지만, 그 세계에서는 살인이 결백을 증명하는 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거야.”

아무로 씨.”

그냥, 너에게는 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

그래서 숨겨뒀던 핸드폰을 찾자마자 전화부터 걸었어.”

 

아무로가 말갛게 웃는 얼굴로 코난을 보았다. 코난은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뗐다가 닫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사이에 처음 출발했던 벤치로 돌아왔다. 아무로는 잡았던 손을 풀고 다시 벤치에 앉았다. 코난은 그의 옆에 따라 앉지 않고 맞은 편에 섰다. 아무로가 의아한 얼굴로 코난을 보았다. 코난은 한 걸음 다가가서 아무로의 목을 끌어안았다.

 

기다렸어요.”

 

아무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코난은 목을 끌어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머뭇대던 아무로가 조심스럽게 코난의 등에 손을 올렸다. 곧 따뜻한 팔이 코난을 꽉 끌어 안았다. 그는 코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아무로가 한숨처럼 속삭였다.

 

 

* * *

 

 

아무로 토오루라는 남자는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입에 올리는 것 중 진실은 드물었고, 심지어 그가 말하는 진실은 교묘하게 거짓말과 엮여 있어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하나의 거짓말을 파고 들어 그 속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또 다른 거짓말이 있는 식이였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거짓말에 짓눌려 죽을지도 모른다. 코난은 가끔 아무로의 뒷 모습을 보며 생각하곤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드물게 진실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힘겹게 꺼내는 말이었다. 늘 자신을 숨기고, 포장하고, 속 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진심은 작고 얇았다. 같은 거짓말쟁이인 코난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진심을 꺼내 보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로를 끌어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틀 뒤부터 포와로에 다시 나갈 거야. 공원의 입구에 선 아무로가 웃었다. 코난 역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 동안 아무로 형이 해주는 햄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어.”

정말? 기쁜데.”

. 아즈사 누나가 해주는 샌드위치에서는 아무로 형이 해주는 맛이 안 났거든요.”

그래? 저번의 제빵사의 가게에서 사 먹으면 되잖아.”

그것도 아무로 형이 해준 것하고는 다른 맛이 났어요.”

 

아무로가 허리를 굽혀 눈을 마주쳐 왔다. 그의 눈은 아까보다 훨씬 생기가 돌았다.

 

데려다 주고 싶은데, 다른 쪽 사람과 만나기로 해서 데려다 주질 못하네.”

공안이요?”

. 한 달 동안 자료만 보내주고 내 안부는 전하질 않았으니, 다들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만나자고 했어. 그 때 봤지? 카자미라고.”

, 그 사람.”

 

코난은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를 떠올렸다. 분명 큐라소와 함께 관람차에 탔다가, 그녀에게 얻어 맞고 기절해 있었던 남자다. 아무로가 바지 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 새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늦은 시간에 나와줘서 고마워, 코난 군.”

아니에요.”

 

눈이 마주쳤다. 코난은 스케이트 보드 위에 올라타서 시동을 켰다. 아무로는 허리를 펴고 코난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이틀 뒤에 봐요.”

그래.”

 

아무로가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 * *

 

 

토토 수족관 사건으로부터 한 달 하고 5일째 되는 날. 코난은 하교 후 서점에 들려 신작 추리 소설을 샀다. 한 달동안 기다려 온 하 편이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포와로의 앞이었다. 포와로의 유리 창문 너머로 햄 샌드위치를 서빙하는 아즈사가 보였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아무로가 보였다. 코난은 포와로의 유리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맑은 종 소리가 울렸다.

 

어서 오세요.”

 

아무로가 미소를 지으며 반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