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코른 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두서 없음 주의
어느 5월
청첩장이 왔다.
사토와 다카기의 결혼식을 알리는 새하얀 청첩장이었다. 쿠도 신이치가 대학 시험 기간 동안 학교 근처의 자취방에서 먹고 자다가, 간신히 쿠도 저택에 돌아온 날 겨우 확인한 것이었다. 신이치는 각종 팬레터 사이에 끼어있던, 유난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봉투를 보고 바로 봉투를 열었고, 청첩장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약 이 주간 저택에 들리지 않았고, 봉투는 편지들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으므로 회신을 보내기엔 꽤 늦었을 터였다. 신이치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어 다카기 형사의 번호를 치고 발신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음 후, 전화를 받은 다카기가 네, 다카기입니다, 하고 성실하게 답했다. 신이치가 청첩장을 쥐고 서재로 달려 들어갔다.
“저, 다카기 형사님. 쿠도입니다.”
‘어? 쿠도 군! 무슨 일이야? 무슨 사건이라도 있니?’
내 연락이 모두 사건에 관련된 건 아닌데. 신이치가 하하,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회신 기간이 끝났다면 청첩장을 받아놓고도 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터였다. 부모님과 관련된 사람의 결혼식이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사토와 다카기는 코난 시절부터 신세진 것이 많았으므로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신이치는 봉투 안에 든 회신용 종이를 꺼내들고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만년필을 꺼내 입으로 뚜껑을 열었다. 책상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빠르게 종이의 빈칸을 채워 내려가며 신이치가 웅얼거렸다.
“정말 죄송해요, 시험 기간 동안 자취방에서 지내느라 청첩장 확인을 지금 했어요. 혹시 회신 기간이 끝났나요?”
‘어? 아니야. 우리 회신 기간을 길게 잡았어.’
다카기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어차피 피로연의 하객들은 대부분 경찰이잖아? 수사본부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집에 갈 시간도 없을 테니 회신이 늦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아― 그건 그렇겠네요.”
‘그래서 미와코 씨와 합의했지.’
“이제 이름으로 부르시네요.”
‘어, 내, 내가 그랬나?’
전화기 너머였지만 다카기의 얼굴이 뻔히 보였다. 보나마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서류로 부채질을 하고 있을 테다. 실제로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신이치가 씩 웃으며 참석 란에 동그라미를 쳤다. 결혼식은 5월 25일 토요일이었다. 그는 책상 달력을 5월로 넘기고 25일에 체크했다.
“사토 형사님, 5월의 신부시네요.”
‘잘 됐지, 결혼식장도 한참 만발한 생화로 꾸밀 수 있고.’
한참 꽃이 필 시기라 꽃값이 덜 들어가. 다카기가 멋쩍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현실감 덕에, 덩달아 멋쩍게 웃은 신이치가 펜의 뚜껑을 닫았다.
“그나저나 의외인데요, 사토 형사님의 결혼식이라면 메이지 신궁 정도는 빌려서 전통 혼례로 치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메구레 경부나 타 경시청 간부들이 딸처럼 여기는 존재였으므로, 1년 예약이 꽉 차 있는 신궁의 결혼식 스케줄이라도 충분히 비울 수 있을 터였다. 아, 하고 앓는 소리를 낸 다카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메구레 경부님이나 경시청장님께서 메이지 신궁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셨었어. 나도 한 번 뿐인 결혼식이니까 메이지 신궁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미와코 씨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했거든.’
그리고, 다카기가 말을 이었다. 어렴풋이 들리던 종이 펄럭이던 소리가 멎었다.
‘미야모토 경부보가, 부케가 꼭 필요하다고. 자기가 받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국 양식 결혼으로 정했어.’
“아아, 유미 씨도 곧 결혼하겠네요.”
신이치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지난 2년 간, 두 사람은 소원해졌던 관계를 착실히 회복했고, 마침내 한 달 전, 하네다 슈키치는 7관을 쟁취했다. 그러고 보니 7관을 따면 결혼하겠다고 했었지. 신이치는 기억들을 되짚으며 미소를 지었다.
‘어라, 쿠도 군도 알고 있었어? 미야모토 경부보에게 애인 있는 것.’
“아… 네, 그, 음, 코난에게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것은 에도가와 코난일 때의 이야기였다. 쿠도 신이치는 이 사실을 몰라야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쿠도 신이치가 아니다. 그는 내심 혀를 차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코난 군은 결혼식에 올 수 있을까?’
“아, 글쎄요… 아마 못 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 코난 군에게 여러모로 도움 받은 것이 많아서 꼭 부르고 싶었는데… 아쉽네.’
“그렇군요…….”
신이치가 말끝을 흐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도가와 코난이 친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알고 있었다. 보편적인 사실. 한순간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신이치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렸다.
‘군, …쿠도 군?’
“아, 네?”
신이치가 퍼뜩 놀라 휴대전화를 바르게 쥐었다. 다카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어제도 밤을 샜더니 잠이 부족한가 봐요.”
‘나도 일이 바쁘니까 이만 끊을까? 회신은 천천히 보내줘.’
다카기가 상냥하게 먼저 끊을 구실을 던져 주었다. 코난에게나, 신이치에게나 변함없이 친절한 사내였다. 신이치는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카기와의 전화를 끊고, 신이치는 딱딱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천장에 매달린 구식 전등이 흐리게 빛났다.
에도가와 코난을 버리고 쿠도 신이치로 돌아온 후 2년, 아직도 수많은 에도가와 코난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곁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의 코난이 너무 선명한 탓에, 신이치도 덩달아 코난처럼 행동하는 일이 적잖게 있었다.
“슬슬 완전히 사라질 때도 됐잖아…”
신이치가 눈가를 문질렀다. 뜨뜻한 온기가 눈꺼풀을 덮었다.
* * *
신이치는 푸른색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반쯤 세워둔 흰색 셔츠 깃 아래로 넥타이를 휘감았다. 긴 손가락이 서툴게 움직이며 매듭을 지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꽤 오랜만에 매는 것이라 손이 자꾸 엇나갔지만, 본래 손재주 덕분인지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펼쳤던 셔츠 깃을 단정히 접은 신이치가 화장실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았다. 검은 원단에 회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정장은 몸에 딱 맞았다. 유키코가 성인이 된 기념으로 맞춰준 것이었다. 이렇게 빨리 입게 될 줄은 몰랐지만. 신이치가 대리석 세면대를 짚고 거울에 가까이 다가갔다. 란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신이치! 아직 멀었어?”
“거의 다 됐거든…”
신이치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하고 손을 들어 왼쪽만 귀 뒤로 넘긴 머리를 슥 훑었다. 평소 느껴지던 부드러운 감촉 대신 헤어 젤이 말라붙어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란이 목소리를 높였다. 신이치! 그는 한숨을 내쉬고 화장실을 벗어났다. 화사한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호텔 로비는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대부분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험악한 기운이 풀풀 풍겼다. 경찰이라고 티를 팍팍 내고 있네. 신이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란이 허리에 손을 올렸다.
“넥타이는 집에서 매고 왔어야지.”
“매려던 찰나에 네가 쳐들어 왔잖아.”
신이치가 볼멘소리를 뱉었다. 란이 눈을 치켜떴으나, 좋은 날 소리를 높이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신이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호텔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경찰 관계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성당에서 작은 규모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피로연은 상관없으니 예식만이라도 참석하고 싶다는 경찰 관계자들이 많아 결국 호텔로 장소를 옮겼다고 했다. 결혼식 이 주 전, 사건에서 마주친 다카기가 살짝 귀띔해준 이야기였다. 그의 얼굴은 갑자기 커진 결혼식 규모 때문에 덩달아 준비할 것과 신경 쓸 것이 많아져 파리하게 질린 채였다. 돈을 아꼈다며 좋아하던 다카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돈을 아꼈다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고 큰 호텔 아닌가. 신이치가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형사들의 얼굴을 관찰하던 신이치의 팔을 란이 잡았다.
“우선 늦기 전에 사토 형사님부터 뵙고 오자.”
“난 아직 축의금도 안 냈다고. 너 먼저 가.”
“아, 그러네.”
“내 인사까지 전해줘. 난 우리 부모님 축의금까지 가져왔거든.”
“어쩔 수 없지. 좀 있다가 식장에서 봐.”
란이 손을 흔들고 신부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로 사라졌다. 신이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정장 마이의 안주머니에서 축의금 봉투를 꺼내 방명록을 작성하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마침 길게 늘어서 있던 축의금 줄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긴 줄을 형성하고 있던 수사 2과의 형사들 중, 한 명이 대표로 축의금과 이름을 전부 적은 모양이었다. 생수를 병째 들이키고 있던 치바가 반색했다.
“쿠도 군, 오늘 멋있게 입고 왔네.”
“치바 형사님도 오늘 멋지신데요. 매일 캐주얼만 입고 다니시던 분이 정장을 다 입으시고.”
“하하, 오늘은 결혼식이니까. 축의금?”
“네, 칠만 엔이에요.”
“뭐? 그렇게나 많이?”
축의금 봉투를 받아 든 치바가 눈을 크게 떴다. 신이치가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제 몫에다가 부모님 것까지 포함해서요. 아버지가 메구레 경부님 뵈러 오고 싶어 하셨는데, 원고 때문에 못 오셨거든요.”
“그렇구나. 여기에 이름 적어줄래?”
치바가 고개를 끄덕이고 펜과 방명록을 신이치의 방향으로 돌려주었다. 신이치가 펜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었다. 그가 페이지의 마지막 이름이었다. 이름을 정자로 쓰며, 옆에 늘어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눈으로 훑던 신이치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이름에서 세 개 건너 있는 칸에 적힌 이름, 카자미 유우. 분명 토토 수족관 사건의 한복판에 있던 공안 경찰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는 후루야 레이의 부하였다. 쿠도 군? 잠시 멍청하게 카자미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던 신이치가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치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안 좋은 거야?”
“아, 아뇨, 별 일 아니에요.”
신이치가 웃는 낯으로 방명록과 펜을 도로 건네주었다. 카자미 유우의 옆에 있던 이름들은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그 페이지에 아무로 토오루나 후루야 레이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치바가 방명록을 덮고 축의금 봉투를 정리했다. 신이치가 눈을 빛냈다. 신이치는 등을 돌리는 척 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요, 치바 형사님.”
“응?”
“혹시 방명록에 제니가타 코이치라는 이름이 있는지 찾아봐 주실 수 있나요?”
“제니가타 코이치? 아, 인터폴의 형사님?”
“네. 저번에 루팡 3세 사건 때 두 분과 인연이 있었다고 들어서요. 꼭 한 번 뵙고 싶던 분이거든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잠깐만.”
치바가 덮었던 방명록을 펼치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넘겼다. 수많은 이름 중에 단 하나의 이름을 찾아야 하니 당연했다. 신이치는 주변을 둘러보는 척, 방명록의 페이지에 적힌 이름들을 훑었다. 익숙한 경찰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치바가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로 토오루, 후루야 레이. 그가 알고 있는 이름은 단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직업 특성 상 다른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결국 판단은 필체로 해야 했다. 하지만, 신이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에도가와 코난은 아무로 토오루의 글씨를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치바의 손이 신이치의 이름이 있는 페이지까지 도착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니가타 경부님은 안 오신 것 같네. 이름이 없어.”
“…그렇군요.”
“바쁘신 분이니까. 아마 오늘도 루팡 3세를 쫓고 계시겠지.”
혹시나 하는 한 줄기 희망조차 뭉개졌다. 희망이 뭉개진 자리에 비참함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한 에도가와 코난조차 그의 필체를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쿠도 신이치는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신이치의 어두운 안색을 본 치바가 볼을 긁적였다.
“어, 그러니까. 쿠도 군이라면 루팡 3세와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분명 제니가타 경부님과 만날 기회도 있을 거야!”
“…그렇네요.”
신이치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치바는 신이치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이치는 일부러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슬슬 저도 들어가 봐야겠어요. 치바 형사님은…”
“나는 식 시작 직전에 들어갈 거야. 교통경찰 사람들이 자리를 맡아준다고 했거든.”
“친절하신 분이네요.”
치바가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신이치는 씩 웃곤 등을 돌렸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예식장은 2층에도 공간이 있었다. 신이치는 일부러 2층으로 올라갔다. 소년 탐정단, 란과 함께 앉으면 코난의 이야기는 당연히 나올 터였고, 그렇다고 그들을 피해 경찰들과 함께 앉아도 코난의 이야기는 나올 것이 뻔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경찰의 대부분은 에도가와 코난을 알고 있었다. 괜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1층에 빼곡하게 앉아 있어 2층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신이치는 2층 오른쪽 난간에 기대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회자 석에 선 시라토리 경부는 넥타이를 매만지고, 주례석에 선 경시청장은 마이크의 높이를 조절하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새 정장을 맞췄다던 메구레 경부는 사토의 어머니와 조금 떨어진 부모 석에 앉아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다. 사토 형사님의 부탁이었겠지. 신이치는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입구와 가까운 벽에 카자미가 서 있는 것을 확인했으나, 역시 후루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안 온 걸까. 잔잔한 피아노곡이 울렸다.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 * *
결혼식은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평소 신던 하이힐보다 훨씬 높은 굽을 신은 사토 형사가 버진 로드를 걷다가 크게 휘청인 것이나, 휘청이는 사토 형사를 붙잡아주려고 주례석 앞에 서 있던 다카기가 달려 나간 것이나, 다카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은 사토 형사가 다시 한 번 휘청이며 부케로 뺨을 후려친 것이나, 경시청장의 길고 지루한 주례를 버티려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틴 경찰들이나, 다카기가 사토 형사에게 반지를 끼워줄 때는 시커먼 오오라를 주위에 둘렀다가, 맹세의 키스를 할 때가 되니 오열한 수사 1과의 형사들이나, 두 사람이 인사하러 오자 마침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린 메구레 경부를 제외한다면 그랬다.
결혼식이 마무리 된 후, 피로연을 위해 야외에 마련된 피로연 장으로 이동하기 전, 결혼식장에서 부케를 던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유미가 손에 끼고 있던 레이스 장갑을 벗어 던지고, 드레스 자락을 걷었다. 옆에 선 슈키치도 진지한 얼굴로 손바닥을 비볐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시라토리도 험악한 얼굴로 자켓을 벗었다. 치바도 대기하고 있었지만 성공 확률은 낮아보였다. 지루한 축사에 지쳐 반쯤 눈을 감고 있던 형사들은 전부 눈을 번쩍 뜬 채, 부케 쟁탈전의 승자가 누구일지 지켜보고 있었다. 신이치도 덩달아 눈을 크게 떴다.
“셋! 둘!”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카운트를 외쳤다. 뒤를 돈 사토 형사가 부케를 머리 위로 들었다.
“하나!”
마지막 구호에 맞춰서, 사토 형사가 부케를 꽤 세게 집어 던졌다. 분명 결혼식 분위기에 취해, 유미가 신신당부 했던 말들을 전부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유미는 미와코, 하고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화사한 색의 꽃잎들이 흩날렸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부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저 허공으로 양 손을 뻗고 있던 치바 형사의 손에 안착했다. 치바의 바로 앞에 서있던 시라토리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 어어?”
치바는 당황한 얼굴로 제 손에 들린 부케를 한 번, 바로 앞에 선 시라토리의 흉흉한 시선을 한 번, 몇 번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부, 부케는 드릴 수 없습니다!”
부케 소동은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계급인 시라토리의 무언의 압박, 유미의 흉흉한 시선, 슈키치의 우울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굳세게 부케를 지켜낸 치바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치바는 부케를 품에 안은 채 둥글고 통통한 등을 보이며 피로연장으로 달려갔고, 부케를 노리던 사람들은 덩달아 그를 쫓았다. 남은 사람들 역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삼삼오오 모여 발걸음을 옮겼다. 신이치는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 미츠히코가 손을 흔들었다.
“신이치 형, 이제야 오셨네요!”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2층에 있었거든.”
“1층으로 내려오지 그러셨어요…”
미츠히코가 아쉽다는 듯 말을 꺼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덮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아무로 오빠였다니까!”
신이치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홍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아유미가 볼을 부풀리고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겐타가 뒤통수에 손을 깍지 껴 대고 입을 비죽였다.
“아무로 형이 여기 왔을 리가 있겠어? 외국에 유학 간다고 했잖아. 이 년 만에 돌아왔을 리가.”
“하지만 분명히 피부색이랑 머리색은 아무로 오빠였단 말이야!”
남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하이바라는 한 발 물러나서 신이치의 소매를 잡았다. 두 사람은 살짝 뒷걸음질 쳤다. 아유미는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아가사 박사는 난처한 얼굴로 아유미를 달랬고, 미츠히코는 겐타를 곁눈질하며 옆구리를 쿡 찔렀다. 복잡한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사람이 맞아.”
“너도 봤어?”
“응. 나는 결혼식장에 오자마자 봤지만. 아유미는 방금 본 것 같네.”
하이바라가 아유미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해? 정말 아무로 씨야?”
신이치가 다급하게 물었다. 하이바라가 입술 위에 손가락 하나를 올렸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였다. 그는 아차, 하고 입을 가렸다. 하이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안의 안경 쓴 남자와 함께 서 있는 걸 봤어.”
“…….”
“이렇게 말해도, 네 눈으로 확인하고 싶겠지.”
신이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미가 아무로 씨를 본 게 방금 전이지?”
“그래. 아무리 빠르더라도 아직 호텔을 벗어나진 못했을 거야.”
“그래…”
“쿠도 군.”
“응?”
“한 가지는 확실히 하고 가는 게 어때?”
“어떤 것?”
신이치가 고개를 기울였다. 하이바라가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한 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그를 만나서 뭘 하고 싶은 거야?”
* * *
신이치는 피로연장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스쳐지나갔다. 주변이 한산해지자, 그는 마침내 바닥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피로연장은 호텔 남쪽의 공원에 마련되어 있다. 호텔의 큰 출입구는 자신이 들어왔던 동쪽 출입구와, 직원들이 드나드는 서쪽 출입구가 있다. 그 사람이라면? 후루야는 분명히 피로연에 참석하지 않고, 예식이 끝나자마자 경찰청으로 돌아갈 것이다. 서쪽 문은 차를 댈 만한 곳이 없으므로 그가 향할 곳은 주차장과 가까운 동쪽 문. 신이치는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푸른색 넥타이가 느슨하게 풀렸다. 하지만 발을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긴 복도 끝에 넓은 홀이 나타났다.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빈 축의금 테이블과, 여전히 화사함을 뽐내고 있는 꽃 장식들. 그리고, 그 꽃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
후루야 레이.
그는 코난이 몇 번 본 적 있는 회색 정장을 입고, 결 좋은 머리카락은 반만 귀 뒤로 넘긴 채였다. 신이치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허벅지를 짚고 허리를 숙여 숨을 골랐다. 후루야는 갑자기 멈춘 구둣발 소리를 눈치 챈 것인지 창밖을 보고 있던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한순간 청회색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신이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입술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신이치는 무릎을 짚었던 손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청회색 눈동자 한가득 쿠도 신이치가 담겨 있었다.
안 돼.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새빨간 경고등이 점멸했다. 쿠도 신이치는 후루야 레이를 모른다. 몰라야 했다. 하지만, 신이치는 다른 답을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청회색 눈동자가 깜빡였다. 신이치는 제 입가를 손등으로 한 번 훑고 손을 내렸다. 그리고 살짝 굽히고 있던 허리를 곧게 폈다. 아직 소년티를 채 벗지 못한 청년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과거에 묻힌 이름을 꺼냈다.
“아무로 토오루씨죠?”
청회색 눈이 크게 뜨였다. 결 좋은 아마 빛 머리카락이 활짝 열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산들바람에 흩날렸다. 에도가와 코난은 그의 머리카락을 꽤 좋아했었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가운데, 후루야가 입을 열었다.
“절 어떻게 아시죠?”
신이치는 다시 제 입가를 문질렀다.
“소년 탐정단 아이들이 아무로 씨를 봤다고 해서요. 아이들이 단체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성인인 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이목이 덜 끌릴 것 같아서 의뢰를 받았습니다.”
“의뢰? 아이들에게서?”
“네.”
관찰하듯 날카로운 눈빛이 전신을 훑었다. 후루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실례지만, 성함이.”
“아… 쿠도 신이치라고 합니다.”
신이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오른 손을 내밀었다.
“탐정이에요.”
후루야가 한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느리게 손을 뻗어 신이치의 손을 잡았다.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분명 코난일 때 손은 후루야의 손바닥만 했었는데. 여전히 후루야의 손보다는 작지만, 빠듯하게 맞잡히는 손의 온기를 선명히 느끼며, 신이치는 다시금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삼켜냈다. 후루야는 잡은 손을 천천히 흔들었다.
“그렇군요. 탐정이라…”
다시 한 번 날카로운 눈으로 신이치를 바라보던 후루야는, 이내 코난이 익히 알고 있던 아무로 토오루의 상냥한 미소와는 조금 다른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우울함이 감도는 미소였다.
쿵, 심장이 뛰었다.
후루야는 천천히 손을 놓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청회색 눈동자가 빛을 받아 더욱 옅은 색으로 빛났다.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부서졌다.
“제가 알던 어떤 사람도 탐정이었는데,”
신이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느리게 말을 이었다.
“아주 영리하고 대담한 탐정이었어요.”
단 둘만이 있는 공간에, 신이치의 커다란 심장 소리와 섞여, 후루야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꼭 작은 홈즈 같았죠. 실제로도 홈즈를 좋아했고.”
새하얀 햇빛이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부딪혀 조각조각 부서졌다. 눈이 부셔 차마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후루야의 에도가와 코난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그 어떤 에도가와 코난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렇게나 찬란한 에도가와 코난을 빼앗는 게 그를 위한 일일까.
신이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 안쪽이 욱신거렸다.
―넌 그를 만나서 뭘 하고 싶은 거야?
신이치는 하이바라의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드물게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지켜보다, 말없이 등을 밀어주었다. 그 순간에는 그녀의 침묵이 무엇보다 고마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때 나에게 화를 내지 그랬어, 하이바라. 끝까지 추궁하지 그랬어. 그랬다면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텐데. 신이치는 오른 손으로 제 눈가를 문질렀다.
난 그저,
그를 다시 만나서,
예전처럼,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하지만 쿠도 신이치는 더 이상 에도가와 코난이 아니었고, 후루야 레이는 더 이상 아무로 토오루가 아니었다. 그가 쫓고 있던 기억은 이미 죽어버린 자들의 것이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한 가지 사실은 커다란 벽이 되어, 지칠 대로 지쳐있는 그를 짓눌렀다.
현기증이 났다. 신이치는 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렴풋한 음악 소리와, 새가 우는 소리, 후루야의 놀란 목소리가 한 데 섞여 어지럽게 들렸다.
아아,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눈부시게 빛나던 어느 5월이었다.